오늘날 정치인이 읽어봐야 할 필독서

[이남철칼럼=EKW] 현재 통용되고 있는 5천원 권 지폐 앞면에는 율곡 이이 초상화와 5만원 권 지폐 앞면에는 조선 시대의 문인, 화가인 이이의 어머니 신사임당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이 지구상에 모자가 화폐에 도안되어 있는 것은 이들이 유일할 것이다. 인물초상은 인물의 위엄과 훌륭한 업적이 화폐의 품위와 신뢰를 지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각종 화폐는 대부분 자국의 위인을 모델로 사용한다

율곡 이이는 1536년 강원도 강릉부 죽헌동에 있는 외가인 오죽헌에서, 덕수 이씨 통덕랑 사헌부감찰 이원수와 평산 신씨 신사임당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조선의 문신이자 성리학자이다. 본관은 덕수. 자는 숙헌 호는 율곡이다. 관직은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시호는 문성이다. 서인의 영수로 추대되었다. 이언적, 이황, 송시열, 박세채, 김집과 함께 문묘 종사와 종묘 배향을 동시에 이룬 6현 중 한 사람이다. 아홉 차례의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구도장원공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벼슬이 낮았던 아버지 이원수는 승진하고자, 일부러 당숙이자 김종직의 문인이며 글을 잘 썼던 이기의 문하에 출입했으나, 부인 신사임당의 권고로 그만두었다. 야사에 의하면, 신사임당이 남편 이원수에게 이기의 집에 출입하다가 화를 당할 것이라고 경고했는데, 과연 이기는 청렴했고 글도 잘 지었으며 벼슬이 의정부영의정까지 이르렀지만, 을사사화에 가담한데다 권력을 남용한 탓에 명종 말엽 관작을 삭탈 당했다.

어머니 신사임당은 학문적 소양이 깊었고, 시문과 서화에 능했다. 또한 어머니 신사임당은 높은 덕을 지닌 인격자였을 뿐만 아니라, 절개가 굳고 시부모를 잘 섬긴다고 칭송을 받던 인물이었다. 이러한 어머니를 두었던 이이는 어려서 어머니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이런 교육환경 덕에 그는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였다. 그의 외할아버지 진사 신명화는 조광조 등과 가까이 지냈으며, 기묘사화 때의 의리를 지켜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외할아버지 신명화는 아들이 없이 딸만 여럿 두었는데, 딸들에게도 유교, 성리학을 가르치고, 공자, 맹자, 주자의 도리를 가르쳤다.

1573(선조 6) 다시 선조의 부름을 받아 승정원의 동부승지가 되었다가 우부승지로 옮겨 『만언봉사』라는 길고 긴 상소문을 올렸다. 이 상소문에서 이이는 조선의 정치와 사회 풍습 중에서 잘못된 것 7가지를 국가적 근심거리라고 지적하였고 세세하게 설명하여 개선책을 강구하라는 요구 사항을 열거하였다. 선조는 이이가 올린 상소문을 보고 감동하여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필자가 편저한 율곡 이이의 만언봉사.(萬言封事)
필자가 편저한 율곡 이이의 만언봉사.(萬言封事)

 

『만언봉사』는 『율곡전서』총 44권 중 권5에 수록되어 있다. 일명 「갑술만언봉사」 또는 「만언소」라고도 불린다. 『만언봉사』앞부분에서는 임금이 여러 선비들에게 직언을 구하는 심정과 취지를 약술하고, 본문에서는 정사의 문제점 7항과 대안의 9항을 실제 상황을 열거하며 체계적으로 논술하였다. 갑술년에 올린 만언에 이르는 상소라는 뜻이다. 그러나 실제는 12,000자가 넘는다. 또한 봉사란 옛날 중국에서 신하가 임금에게 상주할 때 내용이 누설되지 않도록 검은 천으로 봉해 올린 데서 생겨난 말로, 흔히 장편의 상소문 또는 책자를 말한다.

내용은 크게 왕의 자세와 마음가짐을 다룬 것과 시폐(그 당시의 못된 폐단)를 지적하며 개혁안을 제시한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서두에서 이이는 때에 맞추어 변법(법률을 고침)하는 것이 영원불멸의 도라는 정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국가를 세운 지 200년이 지났으니 조종지법이라도 상황에 맞추어 개혁해야 할 것을 주장했다.

이이는 당시의 문제점으로 을사·기묘 사화 이후 관리 기강의 해이, 서리의 부패, 인재의 침체, 각종 제도와 형정의 타락과 각종 조치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점 등을 지적하였다. 마지막으로 당시의 구체적인 문제점과 대책을 논했다. 중요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연산군 때 공물이 늘어나고 불산 공물이 증가했으니 호구를 조사해 공물액을 다시 책정할 것, 둘째, 공천 선상은 대립제가 성행하니 선상을 폐지하고 신공을 정부에서 일괄 수거해 각사에 분배할 것, 넷째, 지방관인 병사·수사 만호 등에게 봉급을 지급해 방군 수포의 폐단을 줄일 것, 다섯째, 군사의 부방을 폐지하고 국경지방에서는 주민을 훈련시켜, 능력이 뛰어난 자는 노비라도 권관으로 등용할 것 등이다.

대체로 이른바 시의라고 하는 것은 수시로 변통하여 법을 마련해서 백성을 구제하는 것을 말한다. 정자가 『주역』을 논하기를, “때를 알고 형세를 아는 것이야말로 주역을 배우는 큰 법이다.” 하고, 또 말하기를, “수시로 변혁하는 것이 곧 상도이다.” 하였다. 대체로 법은 시대 상황에 따라 만드는 것으로서 시대가 변하면 법도 달라지는 것이다.

정치는 현재의 상황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일에 있어서는 실제의 공적에 힘쓰는 것이 긴요하다. 정치를 하면서 시의적절함을 모르거나 일을 하면서 실효성과 업적에 힘쓰지 않으면 비록 훌륭한 임금과 어진 신하가 만나더라도 통치의 효과가 없다.

만언소의 내용은 당시 사회에 대한 전반적인 진단과 처방이라는 점에서 후대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이는 말미에서 백성들의 원기가 이미 쇠퇴해 10년이 못 가서 화란이 일어난다고 경고하고, ‘습속을 따르고 전례나 지키려는 의견들로 인해흔들리지 말고 정성으로 해결책을 구하라고 권고하였다. 율곡 이이가 『만언봉사』에서 선조에게 상소한 정치와 법에 대한 내용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유효한 것 같다.()

□ 이남철 (경제학 박사, 국제개발협력 전문가)
국무총리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선임연구위원과 파라과이교육과학부 자문관 등을 역임한 이남철 박사는 세계 각국을 방문하며 국제 인적자원 및 경제개발 자문역으로 활동하면서 전문 단행본 저서(19) 번역 저서(2), 전문 영문 저서(7) 교양 편저서(1724) 발간하고 해외 학술논문 32편 게재: 국제 학술대회 논문 48번 발표 및 정부정책보고서 132건을 발간하는 등 왕성한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20년부터는 EKW(이코리아월드) 논설위원으로 이남철의 글로벌과 다문화칼럼을 게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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