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성운의 언어문화=EKW동포세계신문]근년에 들어 중국연변지역에 호랑이가 자주 출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불법 사냥을 금지하고 천연림을 보호하여 자연생태계가 복원되어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적 멸종위기 동물로 알려진 백두산 호랑이는 자연보호구의 꾸준한 보호활동에 힘입어 서식지를 부단히 넓혀가는 추세이다. 백년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연변에는 호랑이와 관련이 있다는 데서 비롯된 지명들이 많이 산재하여 있었다. 화룡의 호곡지명은 두만강 강물이 굽이돌며 깊고 길이 험하고 위태로워 호랑이 형국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
[허성운의 언어문화=EKW동포세계신문]룡정시 삼합진 소재지에는 삿갓모양으로 우뚝 서 있는 시루봉이라 부르는 산이 있다. 두만강 너머에서 바라보면 산 형태가 일본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알려진 후지산과 흡사하다. 시루봉을 두고 일본야사에서는 예로부터 온갖 추측이 난무하여 왔다. 1827년에 쓴 일본외사日本外史는 후지다게富士岳라고 적고 있었으나 1893년 일본화가 요우사이노부가즈楊斎延一가 그린 그림은 마치 바다 한가운데 솟아 있은 모양을 하고 있어 시루봉 실상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다가 지난세기 초에 일본인들이 들어오면서 시루봉을 덴노후
[허성운 언어문화=EKW이코리아월드 칼럼리스트]아리랑과 쓰리랑 어원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여러 가지 해석은 있지만 정설은 없다. 언제 시작했는지 누가 먼저 불렸는지 모른 채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민요만큼 그 어원에 대해서도 불투명한 부분이 많다. 지역마다 각이한 특색을 드러내고 각각의 특유의 정서를 담고 있음에도 하나의 후렴구를 가지고 있어 그 어원이 있었음은 분명하다. 금사(金史)문헌에는 坡陀曰「阿懶」 大而峻曰「斜魯」(파타왈「아라」 대이준왈「사로」)라는 기록이 있다. 언덕 고개를 아랄(阿懶)이라 적고 비탈진 고개를 쓰루(斜魯)라 적
[허성운의 언어문화=EKW동포세계신문]거의 인사말 수준으로 널러 쓰이는 일럽다는 말은 연변과 조선 그리고 러시아연해주 사람들이 특유의 어투로 쓰는 말이다. 물론 아직도 한국 사람들에게는 다소 쌀쌀한 느낌이 들게 만들어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생기곤 한다. 지금까지 많은 학자들은 일럽다를 일없다로 왜곡하여 지리적으로 가까운 중국의 영향을 받아 중국어 没事(儿) 메이스(얼)에서 비롯된 어원으로 해석하지만 사실은 앙금처럼 오랜 세월을 두고 가라앉은 우리 언어의 근간을 이루는 뿌리 깊은 말이며 우리 역사와 문화의 오랜 침점물이다.광주천자문에
[EKW=허성운의 언어문화 칼럼] 누구나 고향은 특정한 이미지 혹은 독특한 느낌으로 마음속에 저장되어 있다. 허나 태어나서 고향을 인지하고 고향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삶의 과정에서 지리적 위치와 같은 공간적인 감각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 정서적, 나아가 정신적인 관계까지 맺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심오하다.세세대대로 내려오면서 조상들이 지녔던 이상적 꿈과 염원이 담겨 있고 시대마다 그 사회집단들이 꿈꾸었던 이상적 장소로 거론되고 있어 마을이름도 복지, 승지, 길지와 같은 지명들이 전해져 내려왔지만 진
노들강변 봄버들 휘휘 늘어진 가지에다 무정세월 한허리를 칭칭 동여 매어볼까 에헤요 봄버들도 못 믿을 이로다 푸르른 저기 저 물만 흘러 흘러가노라 오늘날에 와서 노들강변은 한강변에만 있는 고유지명으로 세간에 알려지고 있지만 사실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조선반도 전역에서 널리 불리어졌던 땅이름이다. 만주어사전에서 nukte는 소 말떼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강변 목축지를 뜻하는데 노들이란 말과 일맥상통 된다. 휘휘 늘어진 버드나무로 간이 집을 짓고 목초지 사이로 강이 흐르는 방목지를 노돌 노들이라고 불러왔다.두만강은 북방민족이 유목
아래깡동이란 말은 러시아 연해주지역을 일컫는 함경도 말로서 오늘날 우수리강과 흑룡강 일대를 아우르는 땅이름이다. 아래깡동 지명은 함경도 사람들의 역사와 맥을 같이하고 있으며 과거로부터 근현대사를 관통하여 숨 쉬며 살아있는 유서 깊은 오랜 땅이름이다. 사책에 의하면 7세기로부터 많은 몽골인들은 네스토리교聂斯脱里教를 믿게 되는데 이를 중국에서는 경교景教라고 기록하고 있다. 오늘날 몽골인들은 티베트 불교를 신봉하고 있지만 13~14세기까지만 해도 샤머니즘과 네스토리교를 믿어왔었다. 네스토리우스교가 동방에 전도된 것은 8~9세기로부터 시작
어릴 때부터 익혀온 고향 사투리가 엄청 많지만 그중에서도 천지꽃이라는 말이 가장 먼저 생각이 난다. 고향을 떠나 온 지도 꽤 오래 되었지만 나는 아직도 진달래라는 표준어 대신 천지꽃이란 방언을 더 자주 쓰고 있다. 꽃부데(함경도 방언 꽃봉오리)가 앉은 가지를 꺾어 물병에 꽂아두면 연분홍 꽃이 곱게 피어난다. 해마다 천지꽃이 필 무렵 전쟁터에 나갔던 아들이 돌아온다고 즐거워하시던 외할머니 그러다 때 아닌 꽃샘추위가 들이닥치면 천지꽃이 죽는다고 낙루(함경도 방언 눈물흘리다)하시군 하였다. 몇 해 지나 아들 사망통지서를 받은 후로부터 천
오랜 역사의 흐름을 훑어보면 왕조가 끊임없이 교체되면서 원래 인가가 모여 살던 중심지 거주민들은 전쟁 난리를 피해 끊임없이 자리를 옮겨가면서 차츰 변두리지대까지 밀려나 정착한다.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혈종이 서로 다른 종족 간 오랜 섞임과 공존 속에 이들 언어문화는 서로 융합되며 독특한 방언들이 생성되어 퇴적된다. 세상을 바꿀 막강한 힘을 가진 강대국은 보다 세분화한 발음소리를 문자로 고착시켜 썼다면 약소국은 이에 반해 상대적으로 간소화되어 발음소리를 줄여서 쓰는 합음을 만들어 썼으며 최초의 발음보다 흐릿하게 나타나게 된다.북방언어
'고래'라는 말 첩첩이 가로막힌 산들이 파도처럼 일렁이는 두만강 연안 화룡일대 산골짜기는 과거 선인들 삶의 주된 활동무대였다. 1860년대 함경도지역에 들이닥친 끔찍한 재해와 역병은 마침내 수많은 함경도 사람들이 국경을 박차고 두만강을 넘어 눈 덮인 산악지대로 스며들어 왔다. 이들은 접근이 힘든 산골짜기와 데걱지에서 숨어살면서 따뜻한 벌판으로 내려오지 못하였다. 산악 민족 대부분 그러하듯이 타자를 적대적으로 여겨 골짜기 입구까지 막아가며 철저하게 폐쇄적인 삶을 살아왔기에 이들의 역사는 오늘날까지도 어둠속에 묻혀있다. 거기에 도로 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