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츄어 인생' 조인선 수감록 중에서

바이올린과 함께 한 인생

우선 내가 바이올린을 연주하게 된 배경을 들려주고자 한다.

조선족사회가 한족이나 다른 민족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나름 문화생활을 즐기고, 마을마다 예술단 같은 것을 조직해 활동을 한 점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 마을 동풍촌에도 1960년대 초부터 조선족 젊은이들이 주축이 되어 악단이 만들어졌다. 주로 관악기로 구성된 관악대였는데, 마을의 청년 민병대원들에겐 세금을 받치지 않고 농사 지을 수 있는 공유지가 제공되었다. 마을 청년들은 여기에 농사 지은 것을 팔아 악기를 하나씩 구매해 관악대를 꾸려 문화대혁명 시기에도 계속 활동을 이어나갔다. 지원을 해주거나 월급을 주는 것도 아니다. 순전히 청년들이 좋아서 하는 것이었다.

관악대는 마을 행사, 명절 때, 결혼식이나 잔치 때 활동을 하고, 조선족촌끼리 문화교류 차원에서 행사할 때 마을을 대표해 나가 활동을 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1962년경 나의 형님이 군대 갈 때 관악대가 환송식을 해주었던 것이다. 이런 활동 때문에 마을에서 관악대는 인기가 있었다.

문화대혁명 시기 내 나이 19세 되던 해, 조선족사회에서는 문화생활을 해야 한다는 바람이 유행처럼 불었다. “북조선(북한) 문화를 따라 배워야 한다며 북한 말을 많이 쓰고 북한영화도 봐야 한다는 바람이 분 것이다.

그때 마을에 바이올린을 켜는 사람 몇이 있었다. 소리를 들어보니 듣기에 매우 좋았다. 나는 새납을 불었는데 바이올린에 더 흥취가 갔다. 그래서 집에 바이올린을 사달라고 하니 난리가 났다. 바이올린은 싼 것도 있고 비싼 것도 있지만, 근본상 살 수 있는 곳도 없었다. 마침 누이집에 헌 바이올린이 하나 있었다. 매형이 갖다놓은 것이다. 나는 저녁 때면 누이집에 가서 눈치를 보며 바이올린을 켰다.

바이올린을 배워 줄 학원도 교사도 없었다. 아는 친구의 형님이 바이올린을 켤 줄 안다고 해서 따라 배우고, 군대에서 바이올린을 배워 연주했다는 마을 형님으로부터 조금 지도를 받았다. 그리고 책을 보고 터득해 갔다. 마을에 바이올린 켜는 사람이 몇이 있다보니 어깨 너머로 배우고 서로 비교하면서 실력이 나아지고 발전한 것이다. 딱히 실력이 얼마나 되는 지는 잘 모른다. 마을사람들이 잘한다고 칭찬해주니 좋았다.

나는 23세 때 바이올린을 처음으로 구매했다. 그 당시는 시계가 매우 귀할 때인데 시계를 사지 않고 바이올린을 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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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리아월드(주) 동포세계신문 도서출판 빅포레스트에서 발행한 조인산 수감록 '아마츄어 인생' 표지이다. 책 구매는 카카오톡(아이디 ekw2011)로 문자 주시면 됩니다. 
이코리아월드(주) 동포세계신문 도서출판 빅포레스트에서 발행한 조인산 수감록 '아마츄어 인생' 표지이다. 책 구매는 카카오톡(아이디 ekw2011)로 문자 주시면 됩니다. 
1982년 조인선이 작사/작곡한 바이올린 소리...흑룡강성조선어방송에도 방송되었다.
1982년 조인선이 작사/작곡한 바이올린 소리...흑룡강성조선어방송에도 방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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