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범죄도시, 저는 그거 보고 딱 알겠더라구요"

영화 범죄도시(2017년), 2005년경 가리봉동에서 벌어진 사거니 모티브가 되어 제작된 영화
영화 범죄도시(2017년), 2005년경 가리봉동에서 벌어진 사거니 모티브가 되어 제작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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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2018년 가리봉동 도시재생 주민공모사업(서울시, 구로구 지원)에 참가한 한중문화학당 가리봉텔러팀 임영상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 주동완(재미동포, 코리아리서치 원장)이 합동취재하고 주동완 원장이 작성하여, 가리봉사람이야기(소책자)에 수록된 내용입니다.>

 

조순희 사장
조순희 사장
1998년 12월 가리봉동으로 이사해 와 건두부 공장과 중국식품점을 함께 운영하기 시작한 조순희 사장은 그 당시 중국동포들이 물밀 듯 가리봉으로 들어와 무척 붐비던 가리봉시장을 이렇게 묘사했다.

 

, 두부를 하면서~ 공장에서 두부를 하면서, 이 시장에... 여기가 가리봉시장이잖아요, 그 때는 시장이 지금보다 훨씬 활성화 됐었어요. 지금보다는... 지금 고물상 자리가 가리봉시장이었는데... 제가 가리봉시장에 처음 들어왔을 때 길을 다 잃었어요. 거기를 못 찾아갔어요.”

 

그러면서 그 당시 가리봉의 명물로서 서울 각처에서 쇼핑하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왔던, 가리봉시장 자리에 있던 파노라마 쇼핑몰이 폐허가 되는 과정에 대해 이렇게 덧붙였다.

 

그렇게 잘 되었는데... 그 누구야, 무슨 국회의원 누군지가 개발시켜준다고 건물을 부순 거 아니에요. 잘 있던 거물을 부수긴 부셨는데 주인들이 동의를 안 해주니깐 그냥 부셔진 채로 폐허가 된 거에요.”

파노라마쇼핑센터가 있었던 자리,,현재는 주차장과 고물상이 차지하고 있다.
파노라마쇼핑센터가 있었던 자리,,현재는 주차장과 고물상이 차지하고 있다.

 

파노라마 쇼핑몰은 아직도 폐허가 된 채 고물상들의 고물 집합소가 되어 낙후된 가리봉동을 더욱 을씨년스럽게 하고 있다. 조순희 사장은 가리봉동에 들어올 당시부터 지금까지 가리봉동 우마길에 남아있는 상점들을 기억한다. 우마길에 정말 머리가 까맣게 보일 정도로 많은 공장 노동자들이 넘쳐났던 40여 년 전부터 있어온 은하미용실, 노동자들이 다녔던 공중목욕탕인 보영탕 그리고 하사와 병장이란 뚜엣 가수팀 멤버가 주점에서 행복노래방으로 바꾼 노래방이 여전히 운영되고 있다. 가리봉 시장 뒤로 돌아가면 번성했던 곱창골목 집의 곱창집 하나가 여전히 남아있다. 그리고 30여 년 된 공정사진관과 속옷 팔던 가게, 중국동포들이 공사현장에 일하러 갈 때 옷을 사서 입었던 중고 옷가게는 20여 년 전부터 있었다. 조순희 사장은 당시의 가리봉동을 최근 상영된 영화에서 봤다고 한다.

 

그 때는 솔직히 길이 좀 너무 암흑 같았다면 너무 과하고 활성화가 안 됐으니까 굉장히 어두운 골목이었죠. 근데 그 범죄자의 범죄도시인가...? 그 영화에 나왔던 건물들이 이제는 다 없어졌어요. 저는 그거 딱 보니까 알겠더라고요. 내가 막 가리봉동에 들어왔을 때 있던 건물들 그대로 영화에 나오는 거예요. 다 옛날에 촬영을 해놨던 것 같아요. 영화의 장면들이 다 옛날 그대로예요. 영화 찍으려고 옛날부터 준비를 했던 모양이에요. 제가 영화를 보니까 다 나오는 거에요. 이게 없어진 지 벌써 몇 년이 되었는데... 다 없어졌어요. 그것들이 다 없어졌어요.”


2005년 가리봉동 거리를 재현한 영화세트장에서 촬영한 영화 범죄도시(2017년) 한 장면
2005년 가리봉동 거리를 재현한 영화세트장에서 촬영한 영화 범죄도시(2017년) 한 장면

 

조순희 사장은 중국동포들이 가리봉동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한국인들과의 문제도 많이 일어났다고 한다.

 

많이 싸웠죠. 이해를 안 하고 서로가 모르니까... 많이 싸우고 한국 사람들이 지금도 중국 교포들 하면 무시하는 그런 게 있잖아요. 별로 무조건 안 좋아하니까 트러블이 많이 생겼고. 중국동포들이 하는 행동이나 모든 게 안 좋아 보였어요. 좀 우리 한국 사람들하고 다르죠. , 불법이잖아요. 중국동포들도 중국에서 와서 한국 사람이 중국 사람을 무시한다는 느낌이 그게 먼저 드는 거죠. 그러니까 말할 때도 별로 듣지 않고... 좀 거칠었죠. 사람들이. 무조건 말만 조금만 잘못하면 성질을 확 내고.”

 

한국인과 중국동포 간의 이질적인 문화 사이에서 서로 이해하려는 노력보다는 무시하고 그에 대한 강한 반발심이 갈등의 원인이 되었다는 조 사장의 의견이다.

 

처음에 여기에 산동사람이 좀 많이 살았어요. 교포들도 있었지만. 그리고 필리핀이나 러시아 사람들도 좀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 조선족들이 많이 밀려오면서 물건을 사러 오면 조금만 부딪히면 무조건 싸우는 거예요. 무조건 싸워요. 그러다 교포들이 점점 많아지니까 다른 사람들은 점점 떠나서 저 가산동쪽으로 가서 살다가 이제는 안산으로 다 들어갔죠.”

 

라고 덧붙이는 말에서 여러 민족 간의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조순희 사장은 가리봉 지역경제를 살리는데 중국동포들의 역할이 컸음을 느끼고 있다.

 

처음에 제가 느낀 것은 장사를 하면서 이 죽었던 가게와 상가들이 이제 중국동포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2001년도부터 인건비가 많이 오르면서부터 활성화가 되었죠. 지금도 그렇고 그때 당시부터... 그 이전에는 몰라도 그 후부터서는 우리 한국 사람들이 중국사람, 교포들 상대 안 하면 뭘 먹고 살아요.”

 

그래서 한국 사람들이 중국동포들과 자주 접하고, 이야기하고 그러다 보면 조금씩 이해하게 되고. 많이 배려해주어야 한다고 한다한국인들과 중국동포 간에 주민들 개개인보다는 단체적으로 함께 하는 모임이나 행사가 있었으면 더 빨리 화합이 되었을 텐데 그런 것이 없었던 점을 조순희 사장은 아쉬워 한다.

 

그게 뭐 였죠? 신문사에서 주최해서 노래자랑도 하고... 상인들이 모금도 하러 다니고... 그런데 근데 그게 지속 안 됐잖아요, 안돼. 잘 안되더라고요.”


2005년 추석명절 가리봉동에서 개최된 문화행사 한 장면 @동포세계신문 김용필
2005년 추석명절 가리봉동에서 개최된 문화행사 한 장면 @동포세계신문 김용필

 

그렇게 주민화합이 잘 이루어지지 않은 데에는 정부에서 실시한 불법체류 단속도 한몫 했다. 한국인과 중국동포들이 서로 좀 알만 하고 서로 이해할 만하면 불법체류자 단속이 벌어져 서로 간에 새롭게 위화감이 조성되어 다시 서먹서먹한 관계로 돌아가곤 했다. 단속기간 중에 벌어진 상황에 대해 당시 가리봉 한국인들은 중국동포들에 대해 많이 안쓰러운 감정을 갖고 있었다고 조씨는 말한다. 특히 조순희 사장은 단속되는 중국동포들 가운데 자신의 고객들이 많아 더 안타까웠다고 한다.

   

“2002년도부터 인건비가 올라가면서 경제가 활성화되니까 중 중국동포들이 많이 들어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단속했잖아요. 불법체류자 단속을 했는데... 어마어마했죠. 그때는. 너무너무 비참하게 단속을 했어요. 내가 눈물이 날 정도로...” 라고 조씨는 당시의 안타까웠던 심정을 토로하면서 이어서,  

추석이 돌아오는데... 아마 추석 열흘에서 일주정도 남겨놓고... 이제 사람들이 다 장보러 다니잖아요. 일을 하니까 미리미리 시간 있으면 추석에 먹을 것을 사다 놓으려 하는데... 이 삼거리에 큰 차, 닭장차라고 하잖아요. 두 대씩 갖다 세워놓고... 하여튼 누구라고 할 것 없고 막 잡아서 갖다 넣는 거예요. 그날 비가 엄청 많이 왔는데... , 사과, 양파 다 길바닥에 널브러지고, 길거리에서 진짜 막 땅을 치고 우는 사람도 있고. 막 울고, 살려 달라고 하고. 이대로 가면 바다에서 죽는다고 하고. 어떤 여자는 여기 밑에 중국 가게가 있었는데 막 그 집에 들어가서 도와 달라고 빌고, 울고. 어마어마하게 단속하고 너무 비참하게 단속했어요. 그러고 나서 이제 장사들이 안 되는 거예요. 너무 단속을 하니까 사람들이 다 숨어서 안 나오는 거예요.”

2003년 12월 가리봉상인들이 기자회견 시위를 하는 모습 @동포세계신문 김용필
2003년 12월 가리봉상인들이 기자회견 시위를 하는 모습 @동포세계신문 김용필

 

그래서 이제 그때 가리봉의 한국 사람들도 법무부에 가리봉 거리는 단속을 하지 말아 달라고 진정서를 내고 이 안에서 데모를 했죠. 상인들끼리 모여서 데모도 하고. 그러니까 법무부 직원들이 이제 집까지 막 들어가서 하지는 않고... 처음에는 다 들어갔죠. 집에도 들어가고, 막 가게도 들어가고, 식당에서 밥 먹는 사람도 잡아가고, 어마어마하게 단속을 많이 했죠. 마음이 아플 정도로. 근데 다른 한국 사람들은 그걸 못 느끼죠. 저는 중국 식품점을 하다 보니까 중국 교포들을 많이 상대하다 보니까 그 마음을 이해를 하는 거죠. 한국 사람들은 그냥 단속하는가 보다 했어요.”


조순희 사장이 가리봉에서 최초로 중국식품점을 열고 장사가 잘 된다고 하니까 여기저기 중국식품을 취급하는 가게들이 생겨났다. 처음에는 새로 생긴 중국식품점들도 조 사장의 중국식품점에서 물건을 사다가 팔았다고 한다. 그래서 조순희 사장은 중국식품점 주인들을 거의 다 알고 있다.

 

전 다 알죠. 오래 돼서. 우리가 중국 식품을 최초로 유통을 했기 때문에 다 조금씩 저희를 거쳐 갔잖아요. 여기 한국 사람들은 밤 아홉시만 되면 여기 안 나와요. 무서워서 안 나와요. 근데 저 보고 너는 이렇게 무서운데 열두시, 한시까지 나와 있냐고 그러는데 저는 안 무서워요.”

 

조 사장은 아침에 보통 7시 반부터 가게 문을 열어서 평일에는 11, 주말에는 12시에 닫는다고 한다. 예전에는 1, 1시 반까지도 했다고 한다. 조 사장은 1365일 하루도 안 쉬고 20년 동안 가게 문을 열었다고 한다. 이렇게 단속의 회오리 광풍이 불고 간 가리봉은 2007년부터 김대중, 노무현 정부 들어서면서 불법체류자 단속이 줄어들었지만 상대적으로 장사는 안 됐다.


중국동포들의 한국 입국이 자유롭게 되면서 많은 중국동포들도 중국에 가서 직접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생필품이나 먹거리 음식들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가리봉동의 중국식품점을 비롯한 중국동포들을 위한 생필품 업소들의 매상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상대적으로 중국동포들의 업소가 증가하면서 중국동포들의 음식점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조씨는 로췌반점을 주방장이었던 중국동포에게 넘겨주고 지금은 건두부 공장과 중국식품만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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