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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갑 교수 “중국에서 살더라도 우리의 뿌리를 잊지말자” 하동정(鄭)씨 중국이주사 기록한 족보편찬

등록일 2018년03월11일 18시29분 kakao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정인갑 전 청화대 중문과 교수
[인물/인터뷰=동포세계신문] 정인갑(鄭仁甲) 전 청화대 중문과 교수가 최근 본인이 속한 하동정()씨 한림공파 중국학심파 가승을 잇는 족보를 편찬하고 료녕성 무순시에서 출판기념행사를 가졌다고 한다.
정 교수는 족보 편찬 배경에 대해서 조선족이 점점 중국인에 귀속되면서 뿌리를 잃을까 걱정이 된다면서 중국에서 살더라도 뿌리를 잊지말자. 우리 조상이 중국에 살게 된 배경과 역사를 알자, 우리는 근본이 없는 사람들이 아니다. 후대에게 이런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북경대에서 중국어(中文) 고문학을 전공한 정 교수는 중화서국에서 근무하고 한국에 와서도 황화문화원을 설립해 한국의 족보편찬 사업에 기여를 해왔다.
이번 중국 하동정씨 족보편찬은 정교수의 뿌리를 찾는 일이어서 더욱 뜻 깊었던 것이다.


 정 교수가 편찬한 족보를 보면, 정씨는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일대 경주정씨가 생겨 자손이 번생하여 타향으로 이주해 많은 정씨가 생겨나게 되었는데 약 신라말, 고려초 경상남도 하동군으로 이주한 정씨가 하동정씨이다. 하동정씨는 한국에만 49,440세대에 158,396(한국경제기획원 2000년 통계), 조선(북한) 및 중국 등 세계 각지에 이주한 자 및 18년간 인구증가를 감안하면 30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동정씨의 한림공파 시조는 12165월에 출생한 정승공파의 시조 정응의 10대손 정림으로 1450년 평안북도 철산군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고 임진왜란(1952)을 겪으며 묘지까지 실전되었다가 1798년 묘비를 발견하여 제사를 지내오게 되었다고 한다.
 하동정씨는 언제 중국으로 건너갔을까? 정 교수는 하동정씨 학림공파 지파로 중국학심파에 대해서 소개했다.
본관이 평안북도 철산군인 1888년 출생한 정학심이 191830세 나이에 가족을 이끌고 길림성 통화현 쟈피거우란촌으로 이주한다. 또다시 한국 독립운동의 성지인 료녕성 신빈현으로 이사가 지주 집에서 품팔이로 일을 하며 항일독립운동의 경비를 보태주며 생활을 영위해 왔다. 결국 학심은 1939년 파상풍에 걸려 사망을 하게 된 후 장자 룡국이 1940년 온 집안 식구를 거느리고 무순시 장당향 하장당 촌으로 이주한다. 하장당촌은 300여호가 사는 큰 마을이며 조선족이 1/4을 차지하였다. 그로부터 학심의 후손은 무순 혼하, 장당조선족소학교, 무순조선족중학교의 요람 속에서 장장 반세기가 살았으며 지금도 태반이 그곳에 살고 있다.

 정인갑 교수는 학심의 중국 이주는 조선 평안북도 철산으로부터 1천킬로 이상이며 이미 100년이 지났다면서 중국으로 이주한 학림공파를 분립해 지파로 중국학심파로 이름짓고 조선하동정씨한림공파-중국학심파 족보를 편집인쇄하여 발행한다고 밝혔다.

정교수는 족보 서문 말미에 하동정씨 한림공파 제21대 후손, 중국학심파 제3대 후손 인갑 삼가 씀 2017. 12라고 기명했다.
 
 










 
김용필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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