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후 삶을 중앙아시아 이주민과 함께” 어우름다문화센터 김홍배 선교사

김홍배 선교사
김홍배 선교사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 이곳에도 고려인동포들이 서서히 모여 사는 마을이 생기고 있다. 1993년 카자흐스탄으로 선교사로 떠났던 한국인 김홍배 선교사(71, 기독교한국침례회 소속)2015년 선교사 생활을 은퇴하고 곤지암에 살게 되면서 이다.

김홍배 선교사는 구소련 체제가 붕괴된 후 1990년대 초 중국 등을 다니며 수출업 사업을 하다가 199243세 늦은 나이에 선교사를 자원하였다. 1년 가까이 서울에서 선교사 교육을 받고 1993년 자원하여 가게 된 곳은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우스까메나볼스크라는 지역이다. 카자흐스탄 수도 알마티에서 동북방향으로 1100km 떨어져 있고 알타이산 밑에 있는 작은 도시로 한국인 선교사로서는 최초로 개척지로 간 곳이다.

카자흐스탄은 150개 민족이 살고있는 다민족 국가이고, 소련 체제하에 있었기 때문에 러시아어를 공용어로 사용했다. 김홍배 선교사는 2년간 러시아어를 공부하고 1995년부터 라드닉(Rodnik)교회를 등록해 본격적인 선교활동에 들어갔다.

20년 후 65세 나이가 된 2015년 은퇴시기를 맞아 김홍배 선교사는 귀국하여 교회에서 제공해주는 주택이 있는 곤지암에서 아내와 함께 은퇴후 삶을 살게 된 것이다.
“100세 시대인데 은퇴후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중 그는 한국사회에도 외국인 이주민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다문화가 주요문제가 될 것이라 판단하고 책을 통해 다문화사회를 연구하고 중앙아시아권에서 온 이주민들을 돕는 활동을 펼치기로 결심을 하였다.


2015
년 당시 곤지암 터미널 근처에는 한국인과 결혼한 우즈벡키스탄 여성이 운영하는 우즈벡식당도 있었다. 먼저 찾아가 친분을 쌓게 되었고 또이어 카자흐스탄에서 온 여성도 만나게 되면서 중앙아시아에서 온 이주민들과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러시아어로 통하니 쉽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었고 도움도 주고받을 수 있었다.

김홍배 선교사는 광주시청을 찾아가 지역현황을 파악했다. 광주지역에는 중앙아시아에서 온 외국인이 400명 정도 되고, 크고 작은 공장들도 2500개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놀랬다고 한다.

그러면 됐다.’ 생각한 그는 곤지암에 다문화센터를 설립할 곳을 알아보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일은 놀랍게도 순조롭게 잘 풀려갔다. 지금의 곤지암1리 마을회관을 저렴하게 임대해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 중앙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뜻도 통했다. 이렇게 시작된 아우름다문화센터, 지금은 80여명의 고려인 등 중앙아시아 사람들이 매주 모여 예배도 드리고 공동체를 이루어가고 있다. 아이들도 10여명이 된다고 한다.

 

중앙아시아에서 온 고려인동포들은 거의 대부분 방문취업(H-2)비자로 입국한 경우이고 대부분 한국어를 못한다. 김홍배 선교사는 이들을 위해 발로 뛰어다니며 직장도 찾아주고 집을 찾아준다. 그리고 카자흐스탄에서 선교활동을 할 때처럼 한국어교실도 열고 고충상담, 봉사활동을 해주고 있다. 곤지암에 러시아어를 잘 하는 한국인 목사가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광주지역 뿐만 아니라 이천 등 타지역에서 고려인과 중앙아시아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다.

곤지암역 뒤편 신대리(新垈里)라는 곳이 있다. 방값이 저렴하고 역하고도 가까워 이곳에 고려인들이 하나 둘 모여살기 시작하고 있다. 김홍배 목사는 방을 얻어달라고 하면 신대리에 모여살도록 해주고 있다고 한다.

신대리(新垈里)'새로 터를 닦아 만든 마을'이라는 뜻으로 '새터말'이라고도 한다. 나무가 우거진 이곳은 1945년 해방이후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고려인들이 모여사는 새터말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관련기사] “한국에서 아시아를 찾다”- 경기도 광주시 경안동, 외국인 노동자들의 쉼터- 한국이주노동재단 안대환 이사장에게 들어본다
<본문은 아시아발전재단-한중문화학당 공동기획 "한국에서 아시아를 찾다" 기획탐방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EKW이코리아월드(동포세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