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 도시 경주시가 고려인동포들로 다시 활기를 찾고 있어요”

경주시 성건동 주민 장성우(경주고려인통합지원센터 센터장)씨가 2015년 설립한 경주시외국인도움센터 앞에서,,
경주시 성건동 주민 장성우(경주고려인통합지원센터 센터장)씨가 2015년 설립한 경주시외국인도움센터 앞에서,,

네째날(10월 25일)
탐방 10 - 경주시 성건동 고려인마을

경상북도 경주시 성건동, 고대 신라시대 때부터 경주시의 중심지로 주변에 김유신 묘 등 유적지가 형성되어 있고 부촌(富村)
으로 통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곳 역시 원주민들이 아파트단지가 조성된 신도시로 이주하고 젊은층들이 외지로 많이 나가면서 고령화, 인구감소 현상이 눈에 띄게 두드러지는 곳이 되었다.

그러면서 점차 중국동포, 외국인 등 노동자들의 집성촌을 이루게 되었다가 2015년 경 이후부터는 고려인 동포들이 갑작스럽게 많아지면서 고려인마을로 변모해 가고 있는 곳이다.

 

이런 현상을 알아보기 위해 아시아발전재단-한중문화학당 공동기획 <한국에서 아시아를 찾다> 기획탐방단은 지난 1025일 성건동을 탐방하고 고려인동포들이 모여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려인 집거지 탐방 4번째 날이다.

 

2015년경부터 성건동에서 중고전자제품 거래 개인 사업장을 외국인도움센터로 만들어 경주시 체류 외국인을 돕는 활동을 시작해 온 장성우 센터장은 최근 몇 년 사이 고려인 동포들이 가족동반으로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현재 성건동에만 거주하는 고려인동포들이 3천여명에 이른다고 말한다. 이런 추세로 나아가면 경주시 거주 고려인동포들은 앞으로 더 많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성건동은 많은 변화가 있었던 시기였다. 경주시 외곽지역에 아파트단지 등 신도시가 조성되면서 성건동 주민들이 대거 아파트로 이주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텅 비게 된 단독주택은 원룸형 빌라로 재건축해 이주민 특히 고려인동포들의 보금자리로 변모해 갔다는 것이 장 센터장의 설명이다. 방도 널찍하고 시설, 거주환경도 상대적으로 좋은 성건동 빌라는 보증금 별도 없이 30만원대 월세로 거주할 수 있어서 가족단위로 거주하는 고려인동포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것이다.

 

경주시에는 자동차부품 공장들이 많다. 성건동에 거주하는 고려인은 30, 40대가 주를 이루며 대부분 공장에 취직해 일을 해 아침마다 공장 출퇴근버스가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경주시를 찾는 고려인동포들이 많아짐에 따라 장성우 센터장은 2018년 경주고려인통합지원센터를 별도로 설립해 본격적으로 고려인지원활동에 나섰다. 무엇보다 고려인을 위한 한국어 교육과 자녀들의 교육문제가 시급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해 가며 함께 활동할 수 있는 사람도 찾았다. 이에 경주시에서 교육사업을 오랫동안 해온 최상길 한국글로벌인재교육개발원 원장이 올해 8월부터 사무국장으로 동참해 고려인과 자녀들을 위한 교육과 행사기획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내년에는 더 많은 활동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게 최상길 사무국장의 말이다.

경주시외국인도움센터에는 고려인뿐만 아니라 중국 등 외국인 상담원이 활동하고 법무부 사회통합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경주고려인통합지원센터는 고려인 동포를 중점 지원하기 위해 설립한 센터로 고려인 아이들의 한국어교육 뿐만 아니라 수학, 러시아, 영어교실 등을 운영하고 있다.

최상길 원장은 경상북도가 올해 3월 고려인동포 지원조례를 제정했다는 소식도 들려주었다.

 

고려인 동포들도 센터활동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2004년 한국에 와서 서울에서 한국어 어학당에서 공부하고 2014년 경주 성건동에서 살기 시작한 우즈벡키스탄 출신 김인나 씨가 고려인 동포들에게 한국어도 가르치며 통역사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역시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김알렉산더 씨도 고려인 아이들에게 수학과 러시아어를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또한 대구대 러시아어학과를 졸업한 한국인 김서현 씨는 고려인동포에 관심이 많아 성건동 외국인도움센터에 와서 자원봉사로 참여해 오다가 앞으로 센터활동에 본격적으로 동참할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고려인동포들에게 러시아어와 한국어를 할 줄 아는 한국인 활동가가 매우 필요한 시점이다.

   

25일 성건동을 방문한 <한국에서 아시아를 찾다> 기획탐방단과 인터뷰에서 장성우 센터장은 성건동을 지역민과 고려인동포들이 함께 어울려 사는 고려인 마을로 조성해 나가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가족이나 친구들로부터 돈벌이도 안되는 일을 왜 하냐며 핀잔을 받을 때가 많지만 장 센터장은 변화의 물결을 회피하지 않고 주동적으로 나선 것이다.

성건동에는 고려인동포들이 운영하는 상가가 20여개로 늘어났다. 또한 성건동에는 흥무초등학교, 계림초등학교가 있고 고려인 자녀들이 많이 입학해 새로운 활력을 찾고 있다. 흥무초등학교는 장성우 센터장이 3회 졸업한 모교로 현재 고려인 학생들이 160여명으로 크게 늘어났다고 한다.


장성우 센터장은 “2015년경부터 경주시에 고려인 동포들 유입이 늘어난 이유는 비자정책과 연계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한다.

2015년전까지는 중국동포들이 많았다. 방문취업동포가 2년간 지방에서 일하면 재외동포 체류자격을 부여받는 정책 때문이었다. 그러다 고려인 동포 방문취업 입국자가 늘어나면서 일자리를 찾아 경주를 찾는 고려인 동포들이 늘어났고 중국동포들은 사드 배치 문제 이후 한중관계가 경색되면서 급속히 빠져나갔다고 한다.


경주시는 신라의 고도로 문화유적이 많은 도시이다. 중국동포나 고려인 동포들도 경주시가 어떤 곳인지 알 정도로 잘 알려진 곳이다. 중국동포들은 역사문화탐방 프로그램 일환으로 경주시를 방문해오고 있다. 고려인 동포와 접목할 수 있는 부분은 없을까?

이와 관련 최상길 원장은 고려인 동포들이 경주시와 역사적으로 연계가 있다면서 일제시대때 경주 최부자가 독립자금을 모아 연해주에 보내준 역사적 자료가 최근에 발견되었다고 소개했다. 경주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성금으로 낸 독립자금을 포함해 경주 최씨 부자가 상당한 독립자금을 조성하여 연해주 등에서 활동하는 독립운동가들을 지원해 왔다. 고려인 동포와 연계될 수 있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또한 주목해 볼 것은, 2016년 진도 5.8규모 지진발생 등으로 지진피해가 발생했던 곳이다. 성건동도 마찬가지이다. 김인나씨는 지진으로 고려인들이 경주를 많이 떠났지만 다시 경주로 대부분 돌아왔다고 말한다. 그만큼 고려인동포들에게 경주시가 살기좋은 곳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반증이라 생각한다.

경주시 성건동의 한국인 운영 상가를 포함해 소비시장의 50% 이상이 고려인을 포함한 외국인이 주 고객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성건동에만 22개 이상의 고려인 상가가 생겨났다.

 

 

장성우 경주고려인통합지원센터 센터장

 

경주시 성건동 출생, 전자제품 재활용센터 운영, 2015년부터 성건동에 거주하는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관심을 갖고 활동하기 시작, 외국인자율방범대 결성, 외국인도움센터 운영을 해오다가 고려인 유입이 늘어나자 20182월부터 고려인 동포 지원센터를 설립해 활동하기 시작했다.

고려인지원센터를 오픈했지만, 어려움이 많아 활동을 접으려 하였습니다. 그때 고려인 노인 2명이 저를 찾아와 고려인을 위한 활동을 계속해 주었으면 좋겠다. 우리도 적극적으로 도와줄 테니 활동을 계속 해달라 간절한 요청이 있었다. 그래서 다시 하자결심하게 되었고 2019년부터 새롭게 센터 정비를 활동하기 시작했다.”

 

최상길 한국글로벌인재교육개발원 원장(고려인통합지원센터 사무국장)


장성우 센터장의 제안으로 20188월부터 합류하여 활동하기 시작했다.

최 원장은 경주시에서 공무원, 어린이, 성인 대상으로 주민소통, 양성평등, 인구교육, 안전교육, 치매예방교육 등 다양한 교육활동을 펼치고 있다. 고려인동포 관련 교육 프로그램 개발에 앞장 서는 가운데 한국어 야학과 고려인 자녀 방과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경주시는 인구현황을 보면 전체인구 247천여명, 청년층은 해마다 1%씩 외부로 유출되고 있다. 고령인구가 17.8%를 차지하고 있어 초고령사회를 이루고 있다. 그런 차에 젊은 고려인동포들이 많이 들어오고 아이를 낳고 있어 활기를 찾고 있다.”

 

김 인나 (37, 우즈베키스탄)


2004
년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처음 와서 서울에서 어학당을 2년 다니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한국어도 가르치며 있다가 카자흐스탄 국적의 고려인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2014년 다시 가족과 함께 한국에 왔다. 남편 친지의 소개로 경주의 일자리를 소개받고 오게 되었다고 한다. 직장생활을 하다가 2018년 임신을 하게 되어 직장생활을 휴직하고 경주시외국인도움센터에서 고려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김 알렉산더(35, 우즈베키스탄)

 

2015년 경주에 와서 생활하기 시작, 고려인통합지원센터에서 고려인 학생들에게 수학과 러시아어를 가르쳐주고 있다. 현재 27명의 초등학생들(1학년부터 5학년)이 교육에 참여한다.

경주에는 친구의 소개로 오게 되었다. 처음에는 한국어를 몰라 어려움이 많았다. 경주는 살기 좋은 곳이다.”

 

 

고려인통합지원센터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단체 기념사진, (앞줄) 장성우, 김인나, (뒷줄)최상길, 김서현, 김알렉산더 씨가 탐방단과 함께 기념사진을 남겼다.
고려인통합지원센터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단체 기념사진, (앞줄) 장성우, 김인나, (뒷줄)최상길, 김서현, 김알렉산더 씨가 탐방단과 함께 기념사진을 남겼다.


[
참고] 경주 최씨 부자 이야기

노블레스 오를리주 정신을 실천한 진정한 부자

 

경상북도 경주시 교촌마을, 경주 최씨 부자 이야기는 유명하다. 경주 최부잣집은 통일신라시대 대문가인 최치원(857~ 미상)17대 손인 최진립 부터 28대 손인 최준(1884~1970)에 이르기까지 약 삼백 년 동안 부를 누린 일가를 일컫는는데, 재산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더불어 사는 삶을 살기 위해 매일 아침마다 가훈을 쓰며 조상들의 가르침을 몸에 새겼다고 한다. 최 부잣집 가훈 육훈(六訓)은 초등학교 4학년 교과서에 가르칠 정도로 잘 알려져 있다.

손님을 후하게 대접하라/흉년에는 논을 사지 마라/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주는 사람이 없게 하라/재산은 만석 이상 모으지 마라/최씨 가문 며느리는 시집온 후 3년 동안은 무명옷을 입어라/진사 이상의 벼슬은 하지마라는 여섯 가지 교훈이다.

무엇보다도 일제시대 때 독립운동을 위해 그 많은 재산을 다 썼다는 이야기도 유명하다. 2018년 집안 곳간채 나무궤짝에서 서류와 엽서, 서책 등 1만여 점의 문서가 발견되어 말로만 전해졌던 것이 진짜였음을 입증해 주었다. 구휼의 세부내역과 독립운동가와의 인적네트워크, 국채보상운동이나 백산무역과 관련된 독립자금 내역 등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나라가 없으면 부자도 없다."

 

이 집안의 마지막 부자 12대 최준은 나라가 없으면 부자도 없다라고 하면서 백산 안희제와 함께 백산상회를 설립하여 거액의 자금을 독립단체에 제공하였다. 실제 임시정부의 필요자금 6할을 부담했다고 한다.

올해 3.1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서울 강북구 근현대사 기념관에서 '나라가 없으면 부자도 없다'라는 주제로 기획전이 열려 나라가 어려울 때 어떻게 해야 되는지 진정한 노블레스 오를리주 정신을 되새기게 해주었다.

 

[7일간의 기획탐방 취지문] “한국에서 아시아를 찾다” ..고려인 동포 집거지를 중심으로[1]

아시아발전재단-한중문화학당 공동기획 제2차 기획탐방을 시작하며...국내 체류 고려인은 84,511(2019.9.30 기준)

한국속에서 아시아를 찾다-고려인 집거지 중심으로 7일간 기획탐방/한중문화학당 기획취재팀

 

·기획: 임영상(한국외대 사학과 명예교수)

·사진: 주동완 (한국외대 지식콘텐츠학부 부교수)

·통역: 정막래 (전 계명대 러시아어문학과 교수)

·정리: 김용필 (동포세계신문 편집국장)

<동포세계신문은 이번 아시아발전재단-한중문화학당 공동기획 한국에서 아시아를 찾다2차 기획탐방으로 실시된 고려인 집거지를 중심으로 한 10월 탐방을 <7일간 기획탐방>으로 구성해 특집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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