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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들의 마을 한국의 가리봉동 VS 일본의 가마가사키, 무엇이 같고 다를까?

한국외대 "세계의 한민족수업" 가리봉탐방 이야기 ... 구로공단노동자체험관과 연변거리를 돌며

등록일 2018년04월13일 10시13분 kakao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70, 80년대 가리봉동 이주노동자들의 삶을 보여주는 구로공단 노동자체험관 @사진=이동석



 가리봉동은 작은 노동자 마을이지만 보고 느끼고 미래를 내다 볼수 있는 곳이다. 1970년대 80년대 국내 젊은 이주노동자들의 마을일 때는 대한민국 산업발전의 청사진이 되었고 90년대 이후 현재까지는 중국동포 노동자들의 마을로 중국동포타운 1번지가 되어 대한민국의 다문화사회와 한중교류시대를 열어가는 현장이 되었다. 2010년 이후 구로공단이 디지털단지로 탈바꿈과 동시에 가리봉동은 또다른 세계로 변화하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는 IT산업일군들의 꿈과 함께 어떤 마을로 변모해 나갈 지 기대되는 곳이다.[편집자 주]

[서울=EKW동포세계신문] “세계의 한민족 수업현장답사로 임영상 한국외대 명예교수는 한국외국어대학교 학생들과 함께 지난 331() 중국동포타운 1번지 가리봉동을 답사하였다.
  답사에 참여한 이동석(프랑스어과, 45)씨는 재외동포로서 일본 오사카에 있는 노동자 마을 가마사키와 가리봉동을 비교한 답사 후 보고서를 제출해 관심을 끈다. 그리고 젊은 세대인 배효능(LD전공, 15학번)씨는 구로공단노동자체험관 답사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준다.
 
<<답사코스>>
한국외국어대-가산디지털단지역-구로공단노동자생활체험관-측백나무-남구로역- 가리봉동 연변거리-도시재생센터(앵커)-가리봉 재래시장-가리봉교회-가족센터 건립현장 중국음식체험(중국동포 운영 식당)
 
▶【답사1프랑스어과 이동석 씨의 답사이야기
 
 2018331일 토요일 930분 우리는 먼저 가산디지털단지역 집합 후, 구로공단 노동자 생활체험관을 찾았다. 
 1960
년후반부터 1990년대까지 구로공단에서 일했던 여성노동자의 당시의 생활상태를 복원한 곳이며 관리자 분으로부터 체험관 설명을 듣고 당시의 동영상을 보았다.
 그 후 관내의 전시물(신문, 사진 등), 지하에 있는 쪽방과 체험관 옆에 있는 가게(당시의 구멍가게)를 견학했다.

 이후 아직 잘 정비가 안되어 있는 구로공단시절의 분위기가 남아 있는 동네를 걸으면서 답사했다. 주민들이 축제 때 모여서 행사하는 500년 수명의 측백나무 수호수가 자리잡고 있는 공터 옆에는 작은 정자가 있었는데, 옛 한국의 농촌풍경을 떠올리게 했다.
 
음식점, 식료품점, 잡화점이 잡다하게 있는 골목길을 지나 외국에서 온 사람에게는 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있어야 할 정보를 발행하는 중국동포타운 신문사, 주민들의 놀이터인 콜라텍(콜라 한잔으로 즐길 수 있는 노래방), 현재 공사중인 지역과 주민의 활성화를 위한 거점이 될 지역재생센터(앵커) 자리를 본 후에 구로공단시절부터 주민들의 시장이었던 가리봉시장 길을 걸었다.

 가리봉시장은 지금은 아케이드가 없어지고 공사 중이지만 내년에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 줄 것이다. 주차장 뒤에 있는 가리봉교회를 보고 약 2시간의 답사를 마쳤다. 그 후 몇 명과 함께 중국 연변지역의 음식을 맛보았다.

중국동포타운 1번지 가리봉동으 연변거리 @사진=이동석
 
한국 가리봉동 VS 일본 가마가사키
 
 이번 가리봉답사는 70년대에 수년간 한국에서 산 나에게 그 시기의 한국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그 시기 나와 동세대 또는 연하의 노동자와 직접 대하는 일은 없었지만 관심은 많았다. 그 시대의 한국 노동자상황이 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으며 일본에 돌아 간 후 노동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노동운동을 하게 되었다.

 일본 오사카에 있는 노동자 동네인 [가마가사키]는 일본 노동자 중에서도 건설현장에서(이 점은 구로공단이 있고 주변에 연소 여성 노동자 동네가 생긴 가리봉하고는 차이가 있다) 일하는 노동자와 그 노동자를 상대로 한 상인들의 동네가 있다.
 가마가사키도 일본의 다른 지역에 있는 노동자동네도 일본의 건설경기의 쇠퇴와 노동자의 고령화로 인구가 줄어들고 그 뒷자리에 외국노동자가 들어 오게 된 것은 가리봉하고 같다. 70년 후반부터 80년대에는 일본에 연고자가 있는 한국노동자가 먼저 왔고, 한국인은 연고자가 많이 사는 재일동포동네나 가마가사키 같은 곳에 많이 살고 그곳에서 전부터 있었던 재일동포 코리아타운과는 다른 코뮤니티를 형성해 갔다.

 지금은 한국노동자 수는 많이 줄었고 가마가사키에는 중국인이 많아지고 기타 아시아 노동자도 많아졌다.
그 나라에 외국인 노동자가 들어와서 처음에 살게 되고 코뮤니티가 생기는 것은 어느 나라도 그 나라의 저()계층 노동자가 사는 곳인 것 같다. 그리고 원래 살고 있던 사람들과 마찰과 갈등이 생긴다. 다문화사회를 받아들이고 공존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며 시간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서 새로운 문화가 생긴다

 나는 한국의 시장이나 아직 개발이 안되어 있는 거리를 좋아한다. 그러한 모습이 도시화 되어가고 재개발되어서 없어져 가는 것이 아쉽다. 그러나 그 곳에 사는 사람은 당연히 보다 편한 생활을 원한다. 안전과 미관을 위해서 현대적으로 그 모습이 변해가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그 특색을 살려서 보존할 수 있는 것은 보존해 가면 좋겠다.

 오래 전에 한국을 떠나 외국에 이주 또는 이민으로 간 우리 동포가 몇 세대를 외국에서 살고 다시 한국에 돌아 와서 정착하고 있는 모습을 잠깐이라도 볼 수 있어서 같은 해외동포 2세인 나에게 이번 가리봉답사는 좋은 경험이었다.
 
가리봉시장 일대는 현대화사업에 선정됨에 따라 이제 막 공사를 시작하고 있다. @사진=배효능
 
 

▶【
답사2LD학부 LD전공 배효능 씨의 구로공단 노동자생활체험관’ 관련 답사이야기
 
(가산디지털단지역에서) 5분을 걸었더니 곧바로 도착했고, 체험관에서 근무하시는 선생님이 반겨 주셨다. 구로공단은 과거 구로구에 위치해 구로공단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지만, 현재는 행정지명 일부 변경으로 인해 구로구와 금천구에 걸쳐 있다.
공단의 노동자는 10명 중 9명이 여자였을 정도로 여공의 비율이 높았다고 하며, 정치인 심상정도 그 중 하나였다. 대부분 초등학교만을 졸업했지만 학업에 대한 열정이 높아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나면 야학을 통해 공부를 했다. 일당은 4천원이었는데 형제들 학비를 보태고 나면 생활비도 빠듯했다.

 때문에 몸만 겨우 누울 수 있을 쪽방에 적게는 4명부터 많게는 12명이 함께 생활했다고 한다. 1980년대까지 주요 품목으로 의류, 가발, 전자기기를 위주로 수출했으나 88서울올림픽 이후 땅값과 임금이 오르면서 경공업이 침체되었다.
이후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이름이 바뀌었고, 현재는 약 13만 명이 근무 중이다.

 이렇게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당시 촬영된 영상을 본 후에는 직접 전시관을 관람할 수 있었다. 전시관에는 설명 들은 바를 증명하는 전시물들이 있었다. 당시 찍은 사진에 나온 노동자들은 대부분 여성들이었고, 그들이 야학 때 사용한 교재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치 벌집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의 사진도 보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일제강점기나 군부독재 시절쯤의 역사 공부를 할 때 본 감옥의 독방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 재봉틀, 책상, 책 등의 살림을 포함해 실제 방처럼 꾸며둔 곳도 볼 수 있었다. 혼자 생활한대도 좁게 느껴지는 방에서 4, 6, 12명이서 생활하며 한국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던 여공들이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편집국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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