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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4월 중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천진 주은래등영초기념관(周鄧기念館)을 방문해 상기해본다

등록일 2018년04월07일 15시03분 kakao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주은래등령초기념관을 배경으로 한 필자 김충정 선생
[김충정의 중국기행=EKW동포세계신문] 지난 35일 천진 남개구 동물원과 수상공원 부근에 있는 중국에서도 규모가 제일 인 주은래, 등영초 기념관을 찾았다. 3층으로 된 전시관의 입구에 들어서니 주은래와 등영초 화강석 초상이 우리들을 반가이 맞이하였다. 한평생 변함없이 슬하에 일점의 혈륙 없이 일편단심 오직 인민을 위하여 고락을 함께 한 중국의 제일 모범 부부이다. 그들을 보노라니 어언간 42년 전의 일들이 생각난다.


 
다재다난한 1976. 중국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1976년은 음력으로 말하면 룡띠 해로 불길한 해이다. 우연이라 할까! 중국에서 이 해에 7가지 큰 재해가 있었다. 3가지 자연재해와 4가지 인재이다.
1) 1976, 728일 당산 대 지진이 있었다. 20만 인구가 사망하였다
2) 길림성 상공에서 하늘의 별이 떨어 졌다.. 지금의 말대로 운석인데 별똥돌이다.
3)산동에서 아주 큰 황충(메뚜기)재해가 있었다.
 
이상은 세 가지 자연재해이다.
4)197618일 중국인민의 영원한 총리 주은래가 사망 하였다.
5)197676일 중국인민해방군 주덕 총사령 전국인민대표대회 주덕 위원장이 사망하였다.
6)197699일 모택동 주석이 사망하였다.
7)197645일 북경 천안문에서 주은래를 추모하는 1차 천안문 사건이 일어났다. 200여명의 부상자가 있었다. 등소평이 집정 한 후 천안문 사건은 혁명적 사건이라 사건 참가자들을 지지하고 시정(平反)하였다.
 
이상은 네 가지 인재(人災)이다.


주은래 서거와 천안문 사건(베일에 가려진 사건)
 
1976년 주은래 서거 당시만 하여도 왕홍문(王洪文) 장춘교(張春橋) 강청(江靑) 요문원(姚文元) 4인방이 판을 칠 때였다. 방광암으로 18일에 사망하였음에도 중국 지도부는 그의 죽음과 관련한 기사와 행사 등을 철저히 통제했다.
그러나 강청이 중국인민들의 가슴에 불을 던지였다. 중국 공산당 부주석 겸 국무원 총리가 서거한 2일 후인 110일 북경의 한 병원에서 개최된 고별식이 중앙TV(中央 電視臺)에서 밤 뉴스로 방송 되었다. 그런데 강청이 모자를 쓴 채로 묵념하고 있는 모습을 시청하던 가두의 사람들은 분노를 터뜨렸다.
강청과 4인방은 이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이미 죽은 주은래를 비판하는 논문을 언론에 싣기 까지 하였다. 이는 주은래를 추모하는 국민감정에 찬물을 뿌렸고, 대중의 불만은 높아갔다.
4인방의 거점인 상해에서 주은래의 추도회가 개최된 115일 오전 957, 주은래의 사망 사건에 맞춰 선박들이 일제히 규칙에 위반되는 기적을 단속적으로 30분 이상 계속 울렸다. 그리고 3월 말에 이르러서는 중국인민들의 추모시위와 행진이 잇따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주 총리를 반대하는 자는 모두 타도하라!”는 삐라를 뿌리며 4인방을 비판했다. 1차 천안문 사건의 시작이다.
330일 북경 천안문 광장에 세워진 인민영웅기념비에 주은래를 추도하고 4인방을 비판하는 조사가 북경시 총공회 노동자 이론 그룹에 의해 나 붙었다. 열흘 전부터 기념비에는 주은래 추도의 화환이 비쳐져 있었는데 수도 한 복판에서 4인방에 대한 공공연한 비판이 시작한 것이다. 기념비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날로 늘어났다.

1976년의 청명절(淸明節)은 일요일인 44일이었다. 북경의 하늘은 잔뜩 흐리고, 쌀쌀한 날씨였지만 천안문 광장은 아침부터 열기에 휩싸여 있었다. 건국이래의 국무원 총리 주은래의 죽음을 애도하고 4인방을 규탄하는 대중 행동은 최고조에 달했다. 광장에는 전국 각지로부터 몰려와 연 2백만 명을 웃돌았다. 수도강철공사(首都鋼鐵公司)의 청년 노동자가 눈물을 흘리며 주은래를 추도하는 연설을 시작하였다. 군중들은 주은래는 영원히 불멸”, “주총리를 반대하는 자는 누구든지 타도하라라고 소리치며 호응했다.
청년은 연설에서 우리들은 신념을 가지고 저 야심가 음모가를 철저히 때려 부수지 않으면 안된다.” 라고 외쳤다. 비판의 창끝이 강청 등 4인방에 향해지고 있음을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밤이 되어도 광장에 남아있던 군중은 흩어지지 않고 기념비를 둘러 쌌다.

청명절 밤 4인방의 발의로 국무원총리대행(國務院總理代行) 겸 공안부장 인(당 정치국 위원) 화국봉(華國鋒)이 주재하는 긴급 정치국 회의가 열렸다. 등소평과 주은래의 맹우인 당 부주석 겸 국방부장인 엽검영(葉劍英)에게는 통보되지 않았다. 4인방의 왕홍문(당 부주석)은 천안문 소동의 막후 흑막은 등소평이라 단정하고, 장춘교는 “20년 전의 헝가리가 생각난다고 말했다.
44일 심야에는 천안문 광장의 군중도 훨씬 줄어 들었다. 5일 새벽 1시에 화환과 간판 등의 강제 철거가 시작되었다. 2백대의 트럭이 2천 여개가 넘는 화환을 실어가고, 수천의 노동자, 민병, 공안경찰 등이 인민 영웅 기념비를 포위했다. 그때 화환을 지키던 시위대의 57명이 체포되었다.
 
 날이 새자 군중들이 다시 광장에 모여 들었다. 화환이 제거되고 시위 군중이 체포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수만명 군중이 광장에 인접 한 민병 및 공안 경찰의 지휘부로 몰려가 충돌이 일어났다. 혼란 중 지휘부의 차 몇 대가 불타고 지휘부의 건물에서도 화염이 올랐다.
저녁 6시 반 천안문 광장에 나팔소리가 일제히 울리고 시장인 오덕(吳德)의 목소리가 라디오 방송에서 울려나왔다.
이 정치사건의 반동성을 명확히 인식하고, 그들의 음모궤계(陰謀詭計)를 폭로 하며, 혁명의 경계심을 강화하여 속지 말라. 혁명 대중은 즉시 광장을 떠나라
9시 광장의 조명이 일제히 꺼졌다가 잠깐 사이를 두고 점등되어 다시 광장을 비추었다. 그것이 신호로 되어 대기하고 있던 1만 민병과 3천의 공안 경찰. 인민해방군 북경 위수구 부대가 곤봉과 벨트를 손에 들고, 일제히 출동했다.
광장에 남아 있던 군중은 포위되어 쫓겨 갔다. 광장의 바닥에는 선혈이 랑자했고 몸싸움에서 구타당한 군중이 200여 명이다. 등소평이 실각 되었다가 복귀하고 모주석이 사망하고 엽겸영과 화국봉 및 기타 장령들이 4인방을 타도하고 심판한 일들은 그 후의 일이다.


주은래 전용 비행기
 
천진의 주은래 등영초 기념관(1898.3.8.-1976.1.8 )
주은래는 신중국의 개국 총리로 신중국 성립으로부터 총리 재직 263개월, 준의 회의로부터 41년 동안 부동의 제2인자로 변함없이 우뚝 서 있었다. 모택동의 그늘에 가려졌지만 한평생 원한 없이 25여 년 동안 모주석의 동료로 활약하며, 국무원 총리와 외교부장으로 있었다.
 
모택동의 탁월한 지휘능력을 발견한 사람도 주은래이다. 준의회의 이전에는 주은래가 중국 공산당의 핵심 인물이였지만 모택동은 아니였다. 하기에 중국 더 나아가 전 세계에서도 주총리를 모두 존경하고 있다.
주은래의 출생지는 절강성 소흥이다. 하지만 그는 천진에서 학교를 다니었다. 그래서 천진에 기념관이 1998년도에 세워졌다. 기념관은 2.2(2.2만 평방미터)의 큰 면적에 3층 건물로 되어 있으며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1) 주은래와 등영초 전시관
전시관에는 주은래의 각 시기 활동이 전시되어 있다. 천진, 일본, 유럽 공부 할 때의 활동, 5.4학생운동 시기, 신해혁명 시기, 황포군관학교 시기, 남창봉기 시기, 정강산 시기, 대장정시기, 준의회의 시기, 연안에서의 항일전쟁과 국내 전쟁 시기, 서백파 시기, 신중국 건립이후의 시기 등 각 시기 연대별로 전시되어 있다.
1925년 그는 학생운동의 지도자이며, 중공 주요 인물인 등영초와 결혼하였다. 전시관에는 등영초 기념관도 있다.

2) 북경 중남해에서 주은래 부부가 사무를 보던 서화청(西花廳)
기념관 입구의 우측에는 1:1의 비례로 북경 중남해의 서화청을 방조한 정원이 있다. 남북의 길이는 160미터 동서의 길이는 60미터 전형적인 명청시기 원림과 건축 양식을 띠고 있다. 194911월 주은래와 등영초가 서화청에 입주하여 이곳에서 몇 십 년간 사업과 생활을 하였다.
 
3) 주은래 전용 비행기
주은래 전용 비행기는 이얼14형으로 소련정부에서 195782일에 증정한 비행기이 다. 주 총리는 이 비행기를 정부의 전용 비행기로 중국민항총국에 넘겨주어, 나라 수상 혹은 특별 요청 귀빈들이 타게 하였는 바 지난 세기 60년대 중기까지 이용하였다. 199810월 중국민항총국에서는 이 비행기를 주은래 등영초 기념관에 증정하였다.
 
김충정: 동포세계신문 편집고문,
1943년생, 길림성 용정시, 1970년 동북림업대학 림업기계과 졸업(할빈), 2003년 길림성 화룡림업국에서 정년 퇴직, 한국생활 10년 기념문집 '거꾸로 흐르는 압록강' 출간(도서출판 동포세계,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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