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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기획기사] 중국조선족동포의 재외동포법 시정요구, 조선족문제, 과연 남의 일인가?

한국정부는 중국조선족동포에게 미안하게 생각해야 한다.

등록일 2018년01월17일 05시17분 kakao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중국동포자료[1] 본문은 동포세계신문 김용필 편집국장이 19999월 창간된 잡지 <思想21世紀> 편집부장겸 기자로 활동할 당시 국내 체류 중국동포에 관심 갖고 기획취재한 기사내용으로 200161일 발행 思想21世紀 창간5호에 게재한 기획기사 전문이다.
 
 
재외동포법의 문제
 
200161일 발행 思想21世紀 창간5호 게재 기획기사전문=동포세계신문중국동포는 조선족을 이르는 말이다. 그러나 조선족은 아직 법적으로 재외동포로 인정을 받고 있지 못한 상태이다. 우리나라 법무부에서 199992일 공포한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을 보면, 공포 제정한 재외동포법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815일을 기점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전에 국외로 나간 사람들, 즉 중국 조선족과 독립국가연합(CIS) 동포, 재일 조선적 동포나 재미주 초기 이민 동포는 정부 수립 이전에 국외로 이전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법률해석상 적용대상에서 제외된다. 그 결과 국외에 거주하는 전체 650만 재외동포 가운데 절반 이상이 동포로 인정을 받지 못한다.
이러한 문제가 있기 때문에 지난 312, 조선족과 재외동포관련 민간단체들은 재외동포지위향상 및 재외동포법 개정을 위한 공동세미나를 프레스센터에서 갖고 개선방안을 제시하였다. 이 자리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논의된 것은, 첫째는 재외동포법을 혈통주의를 따르지 않고 1948815일을 기점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고나서 외국으로 간 자만이 재외동포로 규정한 데에 따른 재외동포법의 문제점과 개정방향이었고, 둘째는 중국조선족동포와 러시아 동포가 대부분 불법체류자이기 때문에 이들의 처우를 어떻게 해 줄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첫 번째 과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는 외교통상부와 법무부의 입장차이를 알 수 있었다.
법무부의 안은 혈통주의를 기본으로 하였던 것에 반해 외교통상부는 법무부의 안을 반대하고 과거 국적주의를 내세웠다. 외교통상부의 의견은 외국 국적자에게 법을 적용할 경우 외교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과 또 외국국적 동포에게 특례를 적용할 경우 다른 외국인에게도 최혜국 대우를 하여야 하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우려하고 동포를 우대하는 법제정을 반대한 것이다. 이러한 외교부의 의견에 대해서 이광규 박사(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 재외동포사업본부장, 전 서울대 인류학 교수)는 이스라엘의 경우 전 세계의 유태인이 이스라엘로 귀환하면 국적으로 자동적으로 취득할 수 있다는 것을 예로 들면서,
만일 우리나라가 식민지 지배를 경험하지 않은 국가라면 국체 또는 법의 단절이 없었으므로 과거 국적보유 유무를 근거로 국적부여 또는 혜택부여를 결정하는 것이 합당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식민지를 거치면서 국체 또는 법통의 단절을 경험한 나라이다. 이러한 특수성을 고려할 때, 과거 국적주의를 적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굳이 과거 국적주의를 적용하려 한다면, 대한제국이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적으로 기준으로 하여야 할 것이다라는 의견을 피력하였다. 그러나 이미 9982일에 국회를 통과하여 10일에 공포된 현행 재외동포법은 외교통상부의 의견이 받아들여겨 제정된 법이다.
 
조선족의 단식농성
 
이로 인해 99810일엔 명동성당 앞에서 조선족과 고려인들의 단식농성이 시작되었다. 이 농성은 2일 법이 통과되자 3일 관련 시민단체 49개가 연대를 형성하고 재외동포를 부자 나라에 거주하는 동포와 가난한 나라에 거주하는 동포로 나누는 것이기에 이것을 반대하고 모든 재외동포를 포함하는 법안을 요구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한 여름의 땡볕에서 단식농성을 벌인 것이다. 조선족과 고려인들은 발에 끈을 묵고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서 재외동포법을 개정하라는 항의시위까지 벌였는데, 이런 슬로건을 내걸었다.
동포차별 세계망신
부자집에 시집 간 딸은 딸이고 가난한 집에 시집간 딸은 딸도 아니냐
그리고 동포사회의 의견수렴 없이 졸속으로 통과된 법안에 대해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줄 것을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대통령에게 발송하였다.
이들의 단식농성은 열흘 후인 819일에 해제하게 되었다. 재미동포 대표 로스엔젤레스 한인회측에서 이번 재외동포법이 재미동포의 의견에만 따른 것임을 인정하고 819, 중국동포와 시민단체에 서신을 보내왔던 것이다. 그 내용은,
첫째, 재미동포들이 불가피하게 국적주의 입장에 동의하였다는 것과 차선책으로 동포법 제정 후 혈통주의롤 개정하도록 노력하겠다.
둘째, 동포법의 개정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의 구성을 제의한다.
셋째, 조선족의 지위향상을 위해 공동으로 노력할 것이다.
라는 동포사회내에서의 동질감을 갖고 동포법 개정보완에 함께 하겠다는 것이었다.
조선족동포의 단식농성은 대통령의 귀에까지 들렸다. 항의가 있고나서 김대중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이번에 배제된 동포도 동포이다라고 천명하고 한국내 불법체류하고 있는 동포(조선족, 고려인)를 동포로 인정하는 정책을 취하라는 지시까지 내렸다. 그 지시는 재중동포의 한국 국적취득을 용이하게 할 것, 불법체류동포의 생활안정과 귀국을 보장할 것, 이들을 돕는 민간단체에 재정적 지원을 강구할 것, 그리고 국내 체류 조선족 등을 우리 동포로 간주해 주기 바란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법무부는 19991012일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재외동포 보완대책을 강구하는 안을 발표하였다.
 
헌법소원 이유
 
그러나 조선족과 시민단체들이 반응은 법무부가 보완 제정한 재외동포법도 재외동포의 개념정의 있어서 근원적인 문제를 그대로 안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지금까지 개정요구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조선족 3명은 대표자가 되어 헌법소원까지 낸 상태이다.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헌법 전문에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상해임시정부의 法統을 계승한다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1948년을 기점으로 동포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이다. 3.1운동이나 상해임시정부 수립일을 기점으로 한다면 몰라도 1948년 이전에 일제치하의 착취와 수탈, 그리고 독립운동을 지원하기 위해서 중국이나 러시아 등 해외로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느냐는 데 나온 것이다. 주로 동북3성을 거점으로 살고 있는 조선족들의 경우는 더더욱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둘째, 평등권을 들었다.
19991012일에 보완개정한 재외동포법의 경우 과거보다 훨씬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중국동포에 관하여 국적 취득허용 사유를 7개항에서 9개항으로 확대하였고, 중국동포의 출입국 및 취업기회에 관하여 동포1세의 고국방문을 전면 허용할 것, 친척방문의 요건을 55에서 50세로 낮추고 친척의 범위도 6촌에서 8촌으로 확대하였다. 그리고 친척방문 입국자의 체류를 1년으로 하고 취업을 허용하였으며 재중동포의 외국인 산업연수생 비율을 15%에서 20%로 하였다.
그러나 중국동포들은 이 법안에 대해서도 불만을 가지는 이유가 미국이나 유럽으로 간 동포들과 차별대우하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유럽이나 미국으로 떠나간 이민자들에겐 한국정부가 많은 배려를 해주어 법적지위를 향상시켜주고 한국 국민과 별반 다를 바 없이 대해주면서 왜 중국과 러시아에 거주하는 이민자들에겐 홀대를 대하느냐 하는 불만이 가시지 않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는 행복추구권을 들었다.
조선족이 한국땅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상황, 즉 일제통치를 받았던 암울한 시대적 상황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들에게 죄가 있어서가 아니라 국가가 약했고, 식민통치를 받은 암울한 시대가 낳은 결과물이라는 역사적 사실이다.
 
조선족 그들은 누구인가?
 
중국조선족의 어제 오늘 래일이라는 논문을 쓴 조선족 학자 정판룡 교수는 조선족에 대해서 이렇게 기술해 놓았다.
오늘의 중국 조선족은 생활의 핍박에 의해 지난 세기 중엽으로부터 두만강, 압록강을 건너 살길을 찾아 중국에 정착한 사람들과 그 후손들이다. 그러므로 중국의 조선족은 대대로 중국땅에서 살아온 그런 토차민족과는 달리 조선반도에서 이미 근대민족으로 형성된 뒤 중국에 이민해 온 사람들로서 그 성격으로 보아서는 백여년래 로씨야(러시아)나 일본, 미국 등지에 이민간 우리 민족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
논문에서 정판료 교수는 우리 민족(조선족)이 중국으로 이주하기 시작한 이민역사를 2백년으로 보고, 그 원인에 대해서도 이렇게 기술해 놓았다.
우리 민족이 중국으로 많이 이주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엽 조선 북주 지구에서 련속 재황이 들고 리재민들이 월강금지령에도 불구하고 살길을 찾아 두만강을 넘어 중국 동북지역으로 들어오던 때부터였다. 물론 그 이전에도 비밀로 중국에 들어온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그 수가 많지 못했으며 또 있다고 해도 대다수는 봄, 여름에 강을 건너와 농사를 짓고 겨울에는 다시 돌아가는 형식을 취했다. 살길을 찾아 중국에 넘어온 초기 이주민들은 봉건통치배들의 민족기시정책의 유림을 당하면서 굳은 삶의 의지와 노력으로 묵은 땅을 개간하고 논을 풀어 터전을 만들었다. 더욱이 중국동북지역은 자고로 밭곡식을 위주로 재배하던 곳인데 조선족 초기 이민들은 동북 각지에서 만난신고를 들여 논을 풀고 벼를 재배하는데 성공하였다.
1910년 한일강제합볍을 전후로 하여 한국의 많은 우국지사들도 중국으로 건너왔다. 그러므로 이때부터의 이민은 단순한 살기 위한움직임만이 아니라 나라를 찾기 위한 정치망명 성격을 띤 이민자도 적지 않았다.
당시 중국 동북에 거주하는 조선인들의 인구집계를 보면 1907년에 7만명이였다면 한일강제합볍을 선토한 1910년에는 10만명을 초과하였고 1916년에는 20만명을 넘었으며 1920년에는 459처명에까지 이르렀다고 하였다. 이것을 보면 이때부터 중국으로의 이민은 단순히 살길을 찾아온 것이 아니라 일제통치를 피해오거나 반일을 위해 온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판룡 교수는 1932년 전라남도 담양에서 출생하여 중국연변대학 조문학부를 마치고(1949-1952), 연변대학 부교장까지 지내다(1980-1992)가 현재 한국문학연구회 회장으로 있다. 1997년에는 한국 KBS해외동포상까지 수상한 바 있다. 중국조선족 지성인 사회에서는 정판룡 교수를 민족을 위한 학자, 쉴 줄 모르는 문필가, 전략적인 교육가라 부르고 있기도 하다.
길림성, 요녕성, 흑룡강성이 이룬 동북3성에 서주하는 중국조선족은 이 지역을 민족자치구역으로 정하여 노늘날까지도 자기 말과 자기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으면, 한국을 모국으로 부르고 있다. 이러한 토대를 이룰 수 있는 이뉴는 1910년대에 중국으로 이주한 반일지사들과 초기 이민자들이 즉각적인 항일투쟁보다 우선 학교를 설립하고 후세에 대한 교육을 통하여 애국심을 심어주고 민족교육을 실시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조선족들은 다년간의 노력을 거쳐 유치원부터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민족교육체제를 세우는데 성공하였다는 것이 정판룡 교수의 분석이었다. 더 들어보면,
마을마다 민족유치원이 있고 촌마다 민족소학이 있으며 향과 현에는 민족중등학교와 고등학교가 있다. 연변자치주 소재지인 연길에는 각종 민족대학이 있으며 떠 민족학교 교원이 자질 제고를 위해 세운 교원연수학원, 연수학교만 해도 10개나 넘는다.
료녕, 길림, 흑룡강 각 성에 민족사범학교를 설립했으며 각종 만족전문 기술학교도 수십개나 된다. 각 성, 현마다 중국조선족이 있는 곳에는 민족교육관리부문이 있으며 통일적인 민족교과서 편집무분과 민족교육 출판사가 있어 자체적으로 교과서를 만들고 교원을 양성하며 조선족 교육의 발전을 보장한다. 총적으로 오늘의 중국 조선족은 비록 이민력사가 200년이나 되지만 대다수가 여전히 자기의 말과 무화를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다.
 
조선족동포의 눈물
 
이러한 중국조선족이 한국땅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이후부터이다. 그러나 한국땅은 조선족들에게 희망보다는 절망을 주는 곳이었다.
한국사람한테 사기를 당하여 가산이 거덜난 40대 중반의 남자인 한 조선족동포는 눈물을 머금으며 이런 말을 한다.
우리 아버지도 따지고 보면 대한민국에서 살다가 종군이 되어서 중국에 들어간 거예요. 우리 아버지가 나한테 뭐라고 그러는가 하면 대한민국에 가면 대한민국 사람들 다 할아버지 되고 아버지 되고 어머니 되고 친형제들이다. 절대 가서 싸우지 말고 네 할 일이나 열심히 하고 나쁜 짓은 절대 하지 말아라. 그럈던 아버지도 (한국사람에게) 다 망해서 결국은 돌아가셨어요. 나는 아버지의 임종도 못보았어요.”
이런 불만을 토로하는 조선족들이 많다. 불법체류자라는 약점을 이용하여 임금을 체불하고, 사기를 치고, 위협을 가하여 인권을 유린하는 악덕기업주 한국인과 이런 것에 대해서 방관만 하고 있는 한국정부에 대해서 이들의 실망과 불신은 크기만 한 것이다.
지난 417일 저녁시간 때에 구로공단에 위치한 외국인노동자의 집/중국동포의 집을 방문하여 만난 김해성 목사의 경험담을 들어볼 것같으면 그 심각성이 얼마나 큰지 충분히 알고도 남았다. 김목사는 대표적인 예로 1999년도에 분신자살한 한 중국동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사람의 이름은 김인성입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죽으면서 회사의 흰벽에다 스프레이로 이런 유서를 남겼습니다. 그 회사 사장을 저주하는 말이었습니다.
×× 천벌을 받는다 내 영혼이 영원리 네 영혼을 괴롭히겠다.’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분실자살하면서까지 이런 유서를 남겼겠어요. 경찰에서 조사를 했는데 사장은 잘못한 게 아무 것도 없다는 수사결과를 내었습니다. 사장은 오리발을 내밀고 죽은 사람은 말이 없고, 결국은 아무 보상도 못받고 5개월이 지나도록 장례도 못리추고 끝이 났습니다.“
현재 한국땅에 들어와 있는 조선족은 적게는 10, 많게는 15만으로 추정하고 있다. 1990년대초부터 조선족의 노동문제와 인권문제에 관심을 갖고 일해온 김해성 목사ᅟᅳᆫ 한국에서 불법체류자로 거주하고 있는 이들의 생활실상을 너무나 잘 안다. 그것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절망에 가깝다고 할까, 심지어 술에 취해 김목사를 찾아온 조선족 동포드릐 입에서는
당신들이 우리와 피를 나눈 농포냐? 원자폭탄이 있으면 남한땅에 떨어뜨리고 싶다.”
남한 북한 전쟁이라도 터져라 그러면 북한을 지원해서라도 남한을 쓸어버려야 직성이 풀리겠다
라고 말하며 울분을 토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고 한다. 이럴 때마다 김해성 목사는 대신해서 사과하며 그들의 마음을 달래준다. 그리고 그런 생각일랑 하지 말라고 좋게 좋게 타이르기도 하지만 그들의 분은 쉽게 식지 않고 앙금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그것은 죽어서도 마찬가지임을 알 수 있었다.
외국인 노동자의 집/중국동포의 집의 김해성 목사는 일주일에 장레를 보통 두 세 번 치루는데 하루에 다섯 번을 치룬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이 묻힐 곳이 한국땅에는 없다. 지금도 성남에 위치한 주민교회 지하창고에는 화장은 했지만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납골당에서 유골을 받아주지 않아 유골 60여구가 포장된 채 그대로 쌓여있는 상태이다.
기자와 인터뷰 하던 와중에도 김해성 목사와 상담하러 온 세 명의 중국동포가 있었다. 그 중에는 아내의 죽음 때문에 도움을 청하러 대전에서 올라온 60대 남자도 있었다. 역시 아내의 장례문제 때문에 마지막 도움의 손길을 구하려고 찾아온 것이다. 김해성 목사는 중국동포에게 한국땅은 어떤 곳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살아서는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쫓겨다니다가 죽어서는 외국국적자라는 이유로 납공달이 받아주질 않아요. 살아서도 고통스럽지만 죽어서 조차도 돈이 없어서 장례를 치루지 못하고, 또 마음 놓고 눈을 감을 수 있는 그런 곳이 못됩니다. 중국동포들이 한국사회에 느끼는 배신감 실망감이 얼마나 클까 느낍니다.”
 
한국정부의 조선족 인식
 
그럼 왜 한국정부는 재외동포 600만 중에 절반을 차지하는 중국이나 러시아에 거주하는 동포들을 재외동포로 인정해 주길 꺼려하는 것인가?
 
선문대의 최우길 교수는 한국 정부가 재외동포법에 중국 조선족을 제외시키는 가장 큰 이유는 조선족의 국내 이주 가능성, 노동시장 교란 가능성, 국내 안보에 대한 위해 가능성 및 중국정부와의 분쟁 가능성을 꼽았다.
김해성 목사도 그 이유에 대해서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했다.
첫째, 국제법상 혈통주의 입법을 금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중국 등지에서 반대한다.
셋째, 중국이나 러시아 동포들이 대거 입국하면 국내 노동시장의 교란이 온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러한 조선족동포 등 북방 재외동포에 대해서, 최우길 교수나 김해성 목사는 한국정부가 새로운 인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먼저 한국정부가 통일을 지향한다면 중국 및 러시아 지역의 동포들을 끌어안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지적이다. 중국 조선족 문제와 한반도통일문제와 관련하여서 이광규 박사는 조선족은 통일 선발대 또는 통일 전도사로 고국을 찾았는데 한국은 말만 앞세웠지 전혀 통일을 준비하고 있지 않았다. 한 조선족 작가가 지적한 대로 첫 조국통일으 실험이었다고 할 수 있는 한국과 조선족의 만남은 실패했다고 까지도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서 최우길 교수는 한국이 조선족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는 한국이 한반도 통일 이후 민족국가의 시대를 넘어 한국-중국-일본의 동북아질서 속에서 다른 민족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갈 것이냐 하는 점과 관련 되어 있어서 더욱 중요하다고 피력했다.
국제적 혈통주의 입법금지와 중국의 반대를 극복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최우길 교수는 중국정부의 화교정책을 적극 검토, 이에 상응하는 지위 권한 이익을 조선족에게 부여한 경우, 중국정부도 반대할 명분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이광규 교수는 독일과 이스라엘과 그리이스를 예를 들어 구 소련에 거주하던 자민족 동포 3, 4세의 모국귀환을 허용하고 이들의 정착을 지원하고 있다. 이들 국가의 외교부가 모국귀환을 반대했다는 외신은 잡해 본 적이 없다. 이들 국가의 선례를 따른다면 우리 정부는 구소련 지역 동포와 재중동포가 국내 귀환을 원한다면 이유 없이 이를 허용하는 동시에 정착을 지원해야 한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김해성 목사도 첫째와 두 번째 이유는 정부의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이 반대한다고 전부 하지 말아야 한다면 한국이 중국의 사대주의 국가란 말인가성토하고 이어서 세 번째 이유 국내 노동시장 교란에 대해서는 이런 비유를 들어 설명했다.
어떤 가정에 열 명의 자식이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외부의 압력에 의해서 가정이 파탄나고 찌드러지게 가난하게 살게 되었어요.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시간이 지나서 가정에 남아있는 식구는 잘 살게 되었는데 흩어졌던 식구들은 여전히 못살고 있는 겁니다. 나중에 나중에 연락이 되어서 만나게 되었는데, 흩어졌던 식구가 가난하게 살다가 집으로 찾아온 겁니다. 그때 부모가 어떻게 해야 도리입니까? 너희들은 가난하니까 너희가 집에 돌아오면 밥그릇을 나눠먹어야 되니 들어오지 말라, 도로 나가라 그래야 되는 겁니까? 아니면 조금 힘들고 어렵더라도 밥그릇을 나누고 함께 살자고 그래야 되는 것인지 어느 쪽이 부모의 도리입니까?”
 
국내 노동시장 교란 오겠나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일본의 정주권제도를 한 사례로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제도를 한국사회에 적용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서울조선족교회의 서경석 목사는 지난 312일 공동세미나 토론장에서 중국조선족동포 처우개선방향에 대해서 발표하였다. 그 자리에서 서 목사는 한국사회의 현실적인 문제를 분명하게 인식하면서 조선족 동포의 요구와 정부이 정책이 어떤 입장에서 이루어져 나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솔직하게 말해주고 있다.
일본은 남미에 살고 있는 일본인들에게 정주권을 주어 마음대로 일본에 와서 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정주권 제도가 가능한 것은 남미국가들이 왜 일본인에게만 특혜를 주는가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있고 또 남미 거주 일본인의 수가 50만 정도에 불과하여 1억이 넘는 일본 사회가 이 규모를 충분히 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한국의 경우에는 조선족 숫자가 2백만을 웃돌뿌만 아니라 중국이 조선족에 대해서만 특혜를 주는 것에 대해 극력 반대하고 있다. 조선족의 자유왕래와 취업을 허용하면 조선족사회는 한국사회와 너무 가까워져 중국은 이를 크게 경계하게 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설사 중국이 자유왕래에 동의한다 하더라도 한국사회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데 있다. 자유왕래가 허용되면 적어도 50만에서 1백만 명은 한국에 오려고 할 것인데 한국사회가 이를 수용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최소한 이 숫자가 10년에 걸쳐 조금씩 드러오도록 배분하는 일이라도 해야 한다.
그리고 서목사는 조선족문제를 우리 입장에서만 이해할 것이 아니라 조선족 입장에서 이해하고 정부가 정책을 펼쳐나가기를 호소했다.
우리나라가 일제의 식민지에서 해방되었을 때 북에 김일성 정권만 수립되지 않았더라도 이들 조선족 동포들은 다 귀환하였을 것이고, 그때 선별 입국허가 등의 조처는 절대로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북한정권의 수립으로 귀국길이 막혀 버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중국 공민으로 그곳에 살아야 했다. 이제야 국교가 수립되고 고향에 뒤돌아올 수 있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한국의 사정 때문에 2백만 조선족을 다 받아들일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한국정부는 우리 사정으로 그리스나 독일처럼 2백만을 다 받아들지 못하는 것에 대해 조선족 동포에게 미안한 생각을 가져야 하며 또 이 미안함을 공개적으로 밝혀야 한다.”
이 문제의 실현가능한 해결책으로 서경석 목사는 이런 대안을 결론적으로 내놓았다.
조선족으로서는 만족스럽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조선족동포이 요구를 대체로 충족하면서도 한국도 감당할 수 있는, 그런 규모로 적정 조선족 수를 대략 18만 정도로 하고 그 대신 외국인노동자의 수는 지금보다 훨씬 줄이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된다.”
서경석 목사의 말에 의하면, 현재 법무부의 불법체류자 정책은 근절정책이 아니라 불법체류자들을 대략 10만명 정도 수준으로 유지하는 정책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불법체류자 정책은 한국 노동자가 기피하고 있는 3D업종의 인력수급을 위한 의도라고도 볼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는 불법체류자를 무조건 적발하여 추방하는 것이 아니라 재수 없이 걸린소수의 사람들을 추방하는 정책을 쓰고 있다는 분석이다.
현재 국내에 체류중인 외국인노동자의 수는 135천명 정도이고, 국내체류 조선족은, 정부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합법체류자 25, 불법체류자 44, 도합 69천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이보다 훨씬 많은 10만에서 15만으로 추산하고 있다. (200161일 발행 思想21世紀 창간5호 게재/ 기사작성: 김용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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